영머신·2026.01.06유럽에서 전기 바이크는 정말 좌초되었을까? 내연기관과 EV, ‘적재적소’의 시대로
EICMA 2025에서 공개된 신차와 콘셉트 모델은 2026년 이후의 시장을 겨냥한 예고편이자 실전 배치다. 현지를 직접 취재한 저널리스트 고노 마사시가 진단한 전기 바이크의 현주소를 전한다.



EICMA 2025 무대를 장식한 신모델과 콘셉트 모델은 2026년 이후를 향한 브랜드의 비전 선포이자, 곧 시장에 출시될 실물의 데뷔 무대였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현장을 직접 취재한 저널리스트 고노 마사시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기 바이크의 현주소’를 전한다.
전동화 정책은 삐끗했을지언정, 조용히 스며드는 EV 이륜차
한때 EICMA가 앞장서서 밀어주던 전기 바이크들은 이제 전시장 중심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급부상한 중국과 인도 브랜드들이다. 예전 같으면 전기 바이크 브랜드나 관련 특별 전시로 채워졌을 공간을 이륜차 시장의 새로운 거인들이 차지했다. 또한, 이들 전기 바이크가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듯,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제조사들이 거대한 인도 시장을 겨냥해 다양한 형태의 엔진과 새로운 스타일의 신차를 쏟아내며 EICMA를 기점으로 글로벌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BENDA가 발표한 250cc 하이브리드 수평대향 2기통 파워 유닛. 최대토크 10.2kg-m, 0-100km/h 가속 3.7초라는 강력한 성능을 주장한다.


배기량 250cc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인 볼륨감을 자랑하는 하이브리드 파워 유닛이다.
최근 500cc급 신차가 쏟아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 체급이 인도 시장의 핵심 타깃(스위트 스폿)인 동시에, 유럽과 북미에서는 입문자나 리턴 라이더, 그리고 다운사이징을 고민하는 베테랑 라이더까지 아우를 수 있는 다목적 카테고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을 두고 단순한 내연기관(ICE) 모델의 부활로 치부하기 쉽지만, 시장의 변화는 그리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전 세계 모빌리티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추진해 온 내연기관에서 EV로의 전환이 사실상 제동이 걸렸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전동화라는 대의명분의 이면에 거대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는 점도 명백히 드러났다. 이와 유사한 진통은 비단 이륜차 업계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대만의 전기 바이크 브랜드 GOGORO(고고로)는 과거 대만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주유소보다 많은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을 대만 전역에 구축했다. 여기에 차량 구매 보조금 혜택까지 더해지며 판매량을 크게 늘렸고, 한때 대만 거리는 온통 GOGORO로 가득 찼었다. 하지만 정권 교체로 정부 지원이 끊기자, 저렴한 ICE(내연기관) 스쿠터에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며 지금은 예전만 못한 기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 이륜차 제조사들이 앞다투어 라인업을 구축하며 EV 시장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던 E-Bike(전기자전거) 시장 역시 최근 2년 사이 크게 위축됐다. 한때 EICMA 전시장은 물론, 이륜차 제조사들까지 자전거 및 E-Bike 브랜드와 손을 잡고 급성장하는 E-Bike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E-Bike의 핵심 시장인 유럽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판매량이 급감했다.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년 대비 판매량이 15% 이상 떨어진 곳도 있다. 레저용 E-Bike 시장이 커지면서 차량 가격이 크게 올랐고, 결과적으로 경기 변동에 취약한 시장 구조가 형성된 탓이다. 여기에 세제 혜택과 보조금 제도가 축소되거나 종료된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이처럼 전동화 정책 자체는 난항을 겪고 있지만, EV 이륜차는 실생활 속에 조용히 스며들고 있다. EICMA가 열린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만 보더라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편물 및 음식 배달용으로 전기 스쿠터가 널리 쓰이고 있으며,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유 스쿠터 역시 대부분 전기 모델이다. 비즈니스 형태와 용도를 명확히 구분한다면 전기 바이크만의 강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V 스포츠 바이크 브랜드, 이제는 소형 EV 시장으로 눈길
그동안 고성능 전기 스포츠 바이크를 선보여 온 미국의 ZERO MOTORCYCLE이나, 할리데이비슨에서 독립한 LiveWire(라이브와이어)가 소형 EV 바이크 라인업을 구축하거나 콘셉트 모델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용 목적을 명확히 제한함으로써 전기 바이크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카테고리를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LiveWire가 발표한 소형 EV 'S4 HONCHO'. 기존 할리데이비슨의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레저용 바이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LiveWire가 선보인 전기 맥시 스쿠터 콘셉트 모델로, 2026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탈리아 경찰 사양으로 커스텀된 LiveWire S2 Del Mar. 일본에서 혼다 WN7을 경찰차 사양으로 도입한 사례를 연상시킨다.


ZERO MOTORCYCLE이 선보인 전기 스쿠터 'LS1'.
Can-am 브랜드를 전개하는 캐나다 BRP사는 지난해 EV 이륜차를 발표한 데 이어 올해도 전시관을 꾸몄다. BRP의 전신은 봄바디어(Bombardier)사로, 1970년대에 오스트리아의 엔진 제조사인 로탁스(ROTAX)를 인수했다. 21세기 들어 BRP사가 설립된 이후에도 Ski-Doo나 LYNX 같은 스노모빌, Sea-Doo 제트스키, Can-am ATV 등 그룹 산하 브랜드에 꾸준히 엔진을 공급해 왔다.
Can-am의 EV 이륜차에는 로탁스가 개발한 'E-Drive' 기술이 탑재된다. 모터와 배터리, 인버터는 물론 소프트웨어까지 독자 개발해 이륜차뿐만 아니라 E-카트, ATV 등 다양한 자사 제품군에 적용하고 있다. BRP 산하 브랜드의 제품들은 일반 도로가 아닌 바다나 산처럼 제한된 환경에서 주로 쓰인다. 소음과 매연이 없는 전기 모터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곳에서 쌓은 노하우를 E-모빌리티 개발에 투입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온로드 스타일의 'Can-Am Pulse'(왼쪽)와 듀얼 퍼퍼스 스타일의 'Can-Am Origin'(오른쪽).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모터사이클의 하이브리드(HEV)화도 마침내 실현됐다. 여기에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중국 브랜드들이 가세하면서 이륜차 HEV 시장은 빠르게 활기를 띠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하이브리드 모터사이클이 등장함에 따라, 이륜차 특성에 맞춘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완성도와 강점도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새로운 이륜차 격전지로 떠오른 인도에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동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실제로 인도의 메이저 브랜드들은 저마다 EV 스쿠터를 라인업에 올리며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시장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현지 스타트업의 전기 스쿠터들이 스쿠터 판매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들의 경우, 도심을 벗어나면 주유소를 찾기 어렵다. 길거리 노점에서 페트병에 담아 파는 휘발유를 사야 할 정도로 열악한 곳이 많다. 하지만 이런 지역에서도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전기 인프라는 오히려 잘 갖춰져 있다. 이러한 환경이야말로 EV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삶의 핵심 기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최적의 토양이다.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이 사회 인프라의 한 축을 담당하는 만큼, 그 최전선에 있는 EV의 가치가 각국 정책에 따라 흔들리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를 남의 일처럼 방관할 수는 없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전동화라는 거대한 흐름은 결국 우리에게도 들이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 브랜드 푸조가 선보인 전기 모페드 'Peugeot 103'

람브레타의 전기 스쿠터 'Elettra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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