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머신·2026.02.01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계절의 색, 정적 속에서 마주한 또 다른 시간 - 신슈(信州) 가을 투어링
F1과 MotoGP 현장을 누비며 현재는 전일본 로드레이스 등 여러 미디어에서 활약 중인 사진작가 오리하라 히로유키의 사진 칼럼. 라이더의 마음을 울리는 깊이 있는 사진과 글을 전합니다.



세계 각국의 F1과 MotoGP 현장을 누벼왔으며, 현재는 전일본 로드레이스를 비롯한 여러 미디어에서 활약 중인 사진작가 오리하라 히로유키(折原弘之)의 사진 칼럼입니다. 라이더의 가슴을 울리는 깊이 있는 사진과 글로 찾아갑니다.
찰나와 영원
조금 지난 이야기지만, 최근 몇 년간 기후 변화로 인해 10월인데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가을은 아직 멀었다 싶었지만, 고지대로 올라가면 초가을을 넘어 늦가을의 정취까지 느낄 수 있다. 나가노현 미나미사쿠군, 해발 2,100m에 위치한 시라코마이케(白駒池)는 10월 중순이 단풍의 절정이라고 했다. 아래쪽은 여전히 여름의 끝자락이 남아있어 반소매 차림으로 다닐 만한 날씨였기에 단풍이 들었다는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겨울용 라이딩 재킷을 챙겨 입고, 애마인 할리데이비슨 스포스터(Sportster)의 시동을 걸었다.
평소에는 그저 모터사이클을 타는 행위 자체를 즐기기 위해 목적지 없이 와인딩 로드를 달리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래쪽의 따뜻한 기운을 뒤로하고 조금만 올라가면 단풍을 볼 수 있다는 소식에 목적지를 정하고 가벼운 투어링에 나섰다. 집에서 시라코마이케까지는 약 70km 코스. 한동안 세워두었던 애마의 묵은 때를 벗겨내기에 딱 좋은 거리다.
예전에는 출력이 넉넉한 바이크를 주로 탔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와인딩을 '공략'하듯 타는 스타일과는 멀어졌다. 지금은 스포스터 특유의 툴툴거리는 고동감이 마음에 든다. 상체가 숙여지지 않는 편안한 라이딩 포지션도 한몫한다. 출발한 지 20분쯤 지나 청리(키요사토) 고원을 거쳐 JR 노선 중 가장 높은 역으로 유명한 노베야마에 도착했다. 더위로 끈적하던 공기가 한순간에 서늘해지며, 땀에 젖은 몸을 식혀주는 바람이 기분 좋게 스쳐 지나갔다.
시라코마이케로 향하는 산기슭은 여전히 가을이라기엔 무색할 정도로 따뜻했다. '정말 단풍이 들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의 기온이었지만, 설령 단풍이 없더라도 와인딩 자체를 즐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산길에 접어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스터의 출력이 아쉽게 느껴질 만큼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며 고도가 빠르게 높아졌다. 기온 역시 뚝 떨어졌다. 겨울용 라이딩 재킷을 입고 나온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해발 1,800m 부근에 다다르자 주변 풍경이 급격히 물들기 시작했다. 이내 도로 양옆이 온통 노랗고 붉은빛으로 채워졌다. 마치 순식간에 늦가을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때로는 머리 위를 덮은 나뭇가지들이 단풍 터널을 만들어내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야가 탁 트인 모터사이클이기에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자동차 드라이브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라이더만의 특별한 세상이 펼쳐졌다.
단풍으로 물든 와인딩을 한껏 즐긴 후 목적지인 시라코마이케에 도착했다. 목적지라고는 하나, 사실 단풍 속을 달린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투박한 라이딩 부츠를 신고 15분이나 걸어서 연못까지 가야 하나 잠시 고민도 했지만, 물결에 비친 단풍의 색채를 보고 싶어 걷기 시작했다. 연못으로 향하는 산길은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지만 생각보다 험하진 않았다. 그리고 걷기 시작하자마자, 방금 전의 붉은 단풍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늘진 산길 특유의 축축한 공기 속에서 시야를 가득 채운 초록빛 융단이 나타난 것이다. 그 정체는 군락을 이룬 이끼였다. 그 밀도와 면적, 자라난 기세가 상상을 초월했다.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압도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끼 자체의 수명은 5~10년 정도라고 하지만, 수명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세대교체를 반복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식물이지만 뿌리가 없고 포자를 날려 번식한다. 생육에 적합한 환경에 포자가 안착하면 금세 증식해 땅과 나무를 뒤덮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밀도는 더 촘촘해지고 깊은 초록빛을 만들어낸다. 사람이 살지 않게 된 마을의 경우, 5년이면 땅은 물론 건물 표면까지 이끼가 뒤덮고, 20년이 지나면 원래의 생태계로 완전히 돌아간다고 한다.

이 숲의 이끼들 역시 기나긴 세월 동안 번식을 거듭해 왔을 것이다. 지표면은 물론 거대한 나무 기둥까지 눈이 닿는 모든 곳이 이끼로 가득했다. 연못가에 다다를 때까지 15분 동안 이어진 이 풍경은 상상을 초월하는 강인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대자연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융단은 오랜 세월이 빚어낸 역사 그 자체였다.
단풍을 즐길 겸 바이크를 몰아 찾아간 시라코마 연못(白駒池). 그곳에서 기대 이상으로 경이로운 풍경을 마주했다. 벚꽃이나 단풍처럼 찰나에 생명을 불태우듯 폭발적인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오랜 세월 묵묵히 쌓아 올려 수수하면서도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이끼의 아름다움도 있었다. 두 풍경 모두 그 자체만으로도 찾아갈 가치가 충분했다.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사람을 매료시키는 것과 변함없이 세월을 쌓아가며 마음을 흔드는 것. 아름다움이란 결코 한 가지 모습에 국한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사진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작자로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방법에는 참으로 다양한 길이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한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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