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머신·2026.03.31"잠수함으로 변신하던 그 차!" V8보다 빛나는 초대 로터스 에스프리, 영국에서도 보기 드문 우핸들 모델
영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바닷속을 누비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로터스 에스프리. V8 엔진까지 진화를 거듭했지만, 역시 에스프리의 진수는 초대 모델에 있습니다. 본고장 영국에서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우핸들 사양의 초희귀 모델을 소개합니다.



영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바다로 뛰어들자마자 잠수함으로 변신해 전 세계 관객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로터스 에스프리(Lotus Esprit). 스크린 속 강렬한 모습에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에스프리의 매력에 매료되었습니다. 이후 에스프리는 시리즈 2를 거쳐 터보, V8 엔진까지 진화를 거듭했지만, 에스프리 본연의 정수는 역시 초대 모델에 있습니다. 본고장인 영국에서조차 이제는 매물을 찾을 수 없다는 초희귀 우핸들 사양을 소개합니다.
명차 '유로파'의 뒤를 잇되, 완전히 새로워진 탄생 배경
로터스 에스프리는 브랜드의 전설적인 명차 '유로파(Europa)'의 후속 모델로 1976년에 첫선을 보였습니다. 로터스의 창립자 콜린 채프먼(Colin Chapman)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슈퍼카를 구상했고, 당시 막 '이탈디자인(Italdesign)'을 설립했던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탄생 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지아로가 "내 대표작"이라고 꼽을 만큼 전설적인 모델입니다. 주지아로는 과거 인터뷰에서 "채프먼은 빠른 차를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회상했을 정도로, 두 천재의 협업은 완벽한 시너지를 발휘했습니다.
에스프리의 설계를 살펴보면 유로파의 유산을 이어받으면서도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강판을 용접해 만든 백본 프레임(Backbone frame)은 엔진 앞부분부터 파이프 프레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구조로 진화해 서스펜션 설계의 자유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유로파와 마찬가지로 FRP(섬유강화플라스틱)로 성형한 차체는 상하부를 접착하는 방식을 취하면서도, 모노코크처럼 응력을 분담하는 구조로 발전했습니다. 다만 수작업(Hand-layup)으로 차체를 제작하는 공예품 같은 방식을 고수한 탓에, 차량마다 미세한 개체 차이가 컸던 점은 이전 모델과 다름없었습니다.

1976년 출시 직후 007 영화에 등장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로터스 에스프리. 영화 속 모습 그대로의 화이트 바디가 향수를 자극합니다.

초대 시리즈 1은 생산 물량 대부분이 북미 시장으로 수출되었기 때문에 우핸들 사양의 중고차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현재는 영국 현지에서도 매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공차중량 900kg의 가벼운 차체를 이끄는 경쾌한 엔진 성능
새로운 시대의 슈퍼카를 표방한 것치고는 미드십에 얹은 2.0L 직렬 4기통 16밸브 트윈캠 엔진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 제원 때문에 일각에서는 "에스프리는 진정한 슈퍼카가 아니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V6나 V8, 심지어 12기통 엔진이 득세하던 시절이었으니, 고성능 다기통 엔진을 동경하던 이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들을 만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엔진은 전직 F1 엔지니어였던 토니 러드(Tony Rudd)가 개발한 순수 스포츠 유닛입니다. 보어와 스트로크는 95.2×69.3mm, 압축비 9.5에 델로토(Dell'Orto) 기화기를 조합해 최고 출력 162마력(6,200rpm), 최대 토크 19.4kgm(4,900rpm)을 발휘합니다. 무엇보다 차체 무게가 단 900kg에 불과하기 때문에, 수치상의 출력보다는 가벼운 몸놀림이 선사하는 날카로운 반응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시트로엥 SM의 5단 변속기를 채택한 것 역시 창립자 콜린 채프먼의 혜안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케이스와 링크의 강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당시 미드십 스포츠카로서는 이례적일 만큼 뛰어난 변속감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카 마니아라면 손끝으로 전해지는 변속 체결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실 겁니다. 다만 시트로엥이 부른 납품 단가가 꽤 비쌌던 모양인지, 채프먼이 이에 대해 투덜거렸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로터스 엘리트(Lotus Elite) 시절부터 꾸준히 다듬어온 2.0L 트윈캠 엔진. 엔진룸에는 45도 기울인 세로 배치 형태로 얹혔으며, 시트로엥제 5단 수동 변속기를 맞물렸습니다.

휠 규격은 6.5J×14인치로, 요즘 기준으로는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는 크기입니다. 시리즈 2부터는 림 폭이 7.0J로 넓어졌지만, 14인치라는 휠 직경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시리즈 1 우핸들 모델은 단 268대뿐
1978년 마이너 체인지를 거치기 전까지 생산된 에스프리 시리즈 1은 총 994대입니다. 이 중 우핸들 사양은 단 268대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모두 북미 시장용 좌핸들 모델이었습니다. 당연히 현재 남아있는 개체 수도 매우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10여 년 전 경매에 출품된 영국 사양 모델이 약 500만 엔에 낙찰된 이후, 몸값은 계속해서 오르는 추세입니다. 물론 시리즈 1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면 다른 에스프리를 매물로 만날 수도 있겠지만, 스포일러가 없는 깔끔한 전면부와 에어 덕트 없이 매끄러운 측면 실루엣 등 초대 모델만의 순수한 매력은 쉽게 포기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완벽한 제임스 본드가 되기 위해서는 오직 1세대뿐이니까요.

사다리꼴 모양의 계기판 하우징과 높게 솟아오른 센터 터널 디자인은 에스프리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7,000rpm부터 레드존이 시작되는 타코미터. 실제로 이 엔진은 매끄럽고 경쾌하게 돌아가는 고회전 유닛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범퍼 아래에 더해진 차분한 립 스포일러는 시리즈 1만의 특징입니다. 이후 마이너 체인지를 거치며 측면까지 감싸는 대형 스포일러로 변경되었습니다.

운전석 쪽에만 사이드 미러를 장착한 모습에서 당시의 시대상이 묻어납니다.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지금까지도 애착을 갖는 디자인입니다.
※ 본 기사는 공개 당시의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실제 내용과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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